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라   
 

"남편이  퇴직하고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  귀찮아  죽겠어"라는 말을 주위에서 흔히 듣는다.  
갑자기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공동의 일상을 어떻게 꾸려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생긴다.  
퇴직은 파트너가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과  '함께 있는 시간'을  새로이  조절하는 계기가 된다.  
지금까지는 아내가 집안일을 하거나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남편이 항상 회사에 있었기 때문에  
부부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었고, 그 거리는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  
남편에게는 남편의 일이 있고 아내에게는 아내의 일이 있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뜻하는 바에 따라  일을 보고 살림을 했다.  
그리고 다시  함께 만나면 각자의  일상과 정보를 교환했다.  
남편은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고  아내는 아이들이나  자신의 직장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둘이  시종일관 함께 지내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오랫동안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했을 수도 있지만  막상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매일 붙어 지내는 것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좋은  부부관계란 적당한  거리를 전제로 한다.  
이제는 이거리가 주는  긴장감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남편이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아내가  청소하고  요리하는 것을 지켜본다면  
아내는 무척이나 귀찮고 짜증이 날 것이다.  갑자기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아내는 이제까지 해온 것처럼  일을 할 수 없어진다.  아내에게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남편이 학교  교장이었던 한 부부가 남편의 퇴직 후  체험한 이야기를  내게 들려준 적이 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부부는  양쪽 모두에게  
좋은 생활의  주기와  리듬을 찾기 위해 머리를 한데 모았다.  
그래서 아침식사 후  오전 시간은  각자를 위한 시간으로 갖기로 했다.  
아내가 집안일을 돌보는 동안  남편은 서재에서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취미활동을  했다.  
그러고는  점심 먹고 낮잠 자는 시간을 다시  함께 보냈다.  오후 시간은 열어놓았다.  
함께 등산을 하거나  친구들을  방문하기도 하고 때로는  각자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다시 사이가 좋아졌다.  
즉 어떻게 하면 다시 생활에 균형을 가져올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아야 한다. 
무턱대고  귀찮아하거나 비판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너무 오래 붙어지내는 것은 서로에게 좋지 않다. 
누구나 혼자 있는 시간과 적당한 거리를 필요로 한다.  
함께 하는  활동이 있어야 하는 반면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즐길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노년의 기술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김진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