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 해도 가슴 아픈 이별  
 

행복하게 사는 커플들은 누구나 파트너가 일찍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가진다.  
지극히 당연한 두려움이다. 암에 걸린 남편을 둔 부인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부군이 먼저 돌아가시면 외로움을 느끼실 겁니다. 
그리고 혼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질 것입니다. 
부군께서 재정과 대소사를 처리해왔기 때문에 이제 모든 일을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러울 겁니다.  더 이상 부군과 대화도 나눌 수 없고 포옹하거나 
입을 맞출 수도 없다는 사실이 아픔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이야기할 사람이 없고,  힘든 일이 있어도 들어줄 사람이 없고, 
옆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으니 허전하시겠지요. 평생 사랑과 지지를 보내주던 
든든한 후원자가 없어지는 것이니 마음이 아프고 두려운 것이 당연합니다.
 
1년 전 암으로 부인을 잃은 예순여섯 살 노인의 고백이다.
"마치 나의 한 부분이 죽은 것 같습니다. 너무 허전합니다. 
예순여섯 살의 나이에 다시 파트너를 찾을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많은 노인들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노인의 편지에 나는 다음과 같은 답장을 썼다.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십시오.  
부인이  먼저 가신 것은  아주 슬픈 일입니다. 
빨리 슬픔을 털어버여야 한다는 주위의 충고에 신경쓰지 마십시오.  
어떤 일이냐에 따라  애도에 필요한 시간도  다릅니다.  
그리고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애도를 겪는 동안에는 잡다한 감정에 시달리기도 할 겁니다.  
애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애도의 첫 번째 단계는  부인의 삶과 죽음이 갖는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부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부인의 삶의 원천은 무엇이였습니까?  
부인이 언제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은 무엇이었습니까?  
부인의  삶을 규정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부인에 대한 기억이 무척 아프겠지만  기억 속에서 부인의  비밀들을  하나하나  
알아가시게 될 겁니다.  그다음에는 부인에게  물어보십시오.  
'여보, 내가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소?  
이렇게 살맛이  안 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소."  
아니면 부인에게 편지를 써도 좋습니다. 공동의  삶에서 부인이 했던 
중요한 역할에 감사하고 부인  생전에 잘못한 일에 대해 용서를 비십시오.  
그리고 부인의 입장에서 스스로에게 편지를 써보십시오.  
아마 아무렇지도 않게 술술 써지지는 않을 겁니다.  
내가 내 생각을 나 자신에게 말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 겁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아무리 자신의 생각이어도 그 생각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부인의  생각과 섞인 생각입니다.  
편지를 쓰다 보면 기분이 한결 나아질 겁니다. 
스스로에게 편지를 쓰는 동안에는 생각을 너무 깊이 하지 마십시오.  
생각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면  평소에 말하듯 편하게 쓰십시오.

애도의 다음 단계는 다음의 질문에 답하는 것입니다. 
나는 어떻게 내 아내의 삶과 인간됨에 답할 것인가?  
이렇게 혼자가 되었지만 아내와의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아내와 함께한 삶, 아내를 통해 알게 된 것들,  아내를 통해 느낀 것들에  
내 전 인격과 존재로 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 질문의답을 찾노라면 더 이상 과거의 기억 속에서 떠돌지 않고 
점점  현재와 미래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 살지 재혼할지의 문제가 대두됩니다.  
이 질문에 일반적인  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내와의 관계가 너무나 특별했기 때문에  새로운 관계는 아내에 대한 배신이고,  
그래서 재혼할 수 없다고 말하는 노인들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죽은 아내에게서  무언의 허락을  받았다고 느끼거나 청승맞게 
혼자 지내지 말라고 오히려 아내가 재혼을 재촉 한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든 중요한 것은  자신의 느낌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애도가  시작되는 시기에는  이 문제가 부각되지 않고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도 아닙니다.  
갑자기 재혼 상대를 찾아 나설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열린 마음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다가 마음이 잘 맞는 상대가 나타나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노년의 기술 (안젤름 그륀 신부 지음, 김진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