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면 천하다
 
꼬맹이 시절, 마치 성경에 나오는 병중의 여인이 예수님의 옷깃만 스쳐도 
그 병이 나을 것이라 믿었던 것처럼, 신부님 수단 자락만 스쳐도 
참고서 값을 속인 나쁜 마음이 깨끗하게 될 것만 같았다. 
성당에서도 마구 떠들고 뛰어다니던 철부지 시절이 지나고 
거룩함을 거룩함 자체로 받아들이게 되었을 무렵, 성당은 내게 있어 
걸음걸이도 조심조심하게 되는 너무나도 경건한 곳이고, 
제단은 그곳에 가까이 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송구스러움을 자아내는 성역이었다. 
그런데 신학교에 입학하고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그에 합당한 품위를 수여받고 
사제가 되면서, 내 발로 직접 오르내리는 제단과, 
내 손으로 직접 입는 수단과 제의들 또한 내 손길이 직접 닿는 성구(제구)들의 
신성함에 대한 나의 마음이 무뎌져 있음을 느낀다. 
거룩한 것에 가까이 갈수록 더 거룩해지고 거룩한 것에 대한 
신성함을 더 깊이 쌓아야할 터인데, 때때로 성물들을 접할 때의 마음이 
무뎌지거나 심지어 하느님의 집에서 큰소리를 내기도하고 
급하다고 품위 없이 뛰어다니듯 할 때도 있다.

“흔하면 천해지는 것인가?”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들에게 예수님은 ‘흔한 존재’였다. 누구에게서 태어났고, 어디에 살며, 
지금껏 어떻게 성장했는지 훤히 아는 존재였다. 
그러니 그가 하는 행위도, 말도, 흔하고 훤한 것 안에서 나오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늘에서 왔다니? 누가 부모이고 형제인지 다 아는데….”, 
“생명을 주는 빵이라니? 
자기 식구 배불리 먹을 빵도 부족한 목수 집안인 것을 다 아는데….”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라는 말을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예수님 시대의 몇몇 유다인들의 말로만 인식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똑같이 행동으로 
드러내는 말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알고, 너무 자주 접하고, 자주 듣고, 
자주 만나고, 자주 다니고, 자주 먹(모시)는 행위들이 
오히려 함정이 될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훤하다는 것’, ‘많이’, ‘자주’라는 것은 
뻔뻔함을 자아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뻔뻔함들은 가끔씩 우리들에게 거룩함을 거룩함으로 대하지 못하고 
잘 모르면서도 그저 그렇게 흘려보내도 되는 것인 양 변질시킬 수 있다.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거룩하신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어 고백한다면, 그분과 관계된 모든 것들에 경외심을 표할지어다. 
그분의 집인 성전, 거룩한 제단과 성전 안의 모든 것들, 
그분의 말씀인 성경,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 주위의 
이웃들과 함께 봉사하는 형제·자매들, 그리고 그분께서 당신과 동일시하신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고아, 과부, 장애인, 병자들, 역전에서 구걸하는 이들), 
죄인들까지도….
요즘 세상은 옛날에 비해서 성당도, 사제도, 신자들도 많아졌다. 
그리고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도 참 많아졌다.
“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복음화국 소공동체부 전담 - 이상룡(요한 크리소스토모)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