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쉬는 시간이 없습니다   

꽃들은 봄의 주인공으로 듬뿍 사랑을 받고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금은 짙고 푸른 잎새들에게 가려 나무들의 활동이 보이지 않을 뿐더러 
그늘을 만들어 주는 역할만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봄에서 겨울까지, 쉼 없이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고 있는 나무들에게 놀랍니다. 
꽃들은 자신의 색깔과 향기로 사랑만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꽃으로 인해 
열매의 자리를 싹틔우게 되고 잎들은 조금씩 그 몸을 넓히면서 
자라나는 열매를 돌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유실수들이 지금 작은 열매를 달고 천둥과 폭우와 폭풍을 견디며 타는 듯한 
강한 땡볕을 참아 내고 있습니다. 
열매들의 성장을 지키는 나무들을 바라보노라면 예수님의 사랑이 
스며들지 않은 자연이 없다는 놀라움에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으면서 사랑의 역사를 이루고, 
가슴 안에 뜨거운 물결의 실체를 경험하게 하시는 주님의 뜻이 
바로 우리가 바라보는 나무 한 그루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작은 풀 한 포기도 헛되이 만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욕망에 비해 
하찮은 것이지만 사랑은 쉬는 시간이 없다는 진리를 알게 합니다.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마르 10,51) 는 말씀을 읽을 때마다 
주님이 저에게 백지 청구서 하나를 내 미시는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왜냐하면 곳간도 창고도 없는 날짐승도 먹여 주시는데 
하물며 우리가 더 귀하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시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한 그루 나무에게 숨어 있는
 진정한 생명의 뜻을 해독하려는 마음의 진실이 저에게 있는지 살피게 됩니다. 

단 한 번도 '그것은 내가 들어 주기엔 너무 벅찬 소망이구나 미안하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신 주님. 
더 믿고 더 매달리고 더 다가가는 사랑 받는 자의 자세에서 빗나가, 
불안해하고 무슨 다른 도리를 찾아 볼까하고 
주변을 초라하게 비겁하게 두리번거리는 저이기도 합니다. 

'쉿 ! 조용히' 지금은 열매가 익어가는 시간. 
바로 우리 하느님이 오늘의 희망 청구서를 우리의 가슴으로 배달하는 그 시간입니다. 
하느님, 우리가 가슴을 열고 기다리게 하소서. 

시인: 신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