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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님-우리의 죄로 인한 순교자



    우리의 죄로 인한 순교자(The martyrs of our sins)

    산타 마르타의 집 소성당 미사에서
    교황님의 아침 묵상, 2014년 1월 31일 (금)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그날의 마르코 복음(4,26-34)에 관하여,
    이 구절이 하느님의 나라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복음에서 읽은 것처럼 씨를 뿌린 사람조차 그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 당신의 나라가 자라도록 하시는 분은 하느님 자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자라남은 우리가 청해야 할 선물입니다.우리가 주님의 기도에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라고
    기도할 때 우리는 매일 하느님께 이 선물을 청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당신의 나라가 우리 안에,
    사회 안에 자라게 하소서. 하느님의 나라가 커나가게 하소서." 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가 자라날 수 있듯이,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제 1독서인 사무엘기 하권(11,1-4a. 5-10a. 13-17)에서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다윗이 받은 유혹을 이야기합니다."교황님께서는 오늘의 독서를 설명하기 위해 어제의 독서로 돌아가,
    특히 "다윗의 주님을 향한 아름다운 기도: 백성을 위한 기도"를 언급하셨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양분될 수 없습니다' 참조 http://blog.naver.com/regnumchrist/220058177164 ]
    "다윗은 자신의 백성을 위해 기도하는 왕이었으며, 그의 기도는 성인의 기도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해... 우리가 오늘 독서에서 들은 일이 벌어집니다.
    다윗은 평화롭습니다... 그는 정상적인 삶을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점심 후에
    휴식을 취한 뒤, 잠자리에서 일어나 옥상을 거닐다가, 우리야의 아내 밧 세바를 보았을 때,
    다윗에게 유혹이 닥치고 그는 유혹에 빠집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고 모두 유혹받기 때문입니다.
    유혹은 매일의 양식입니다. 우리 중 누가 이렇게 말한다면: "나는 한번도 유혹받은 적이 없어" 거기에
    적당한 대답은, "너는 커룹(천사)이거나 약간 바보이거나 둘 중 하나야" 일 것입니다.
    사실 삶에서 투쟁과 싸움은 정상적인 것입니다: 악마는 가만히 있지 않으며 승리를 원합니다."

    "성경의 이 장면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홉째 계명을 어기게 하는 유혹이나 죄 자체라기보다는
    다윗이 행동하는 방식입니다. 다윗은 죄에 대한 자각을 상실하고, 단순히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의 태도는 하나의 "표시(sign)"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줄어들고 있을 때, 그 표시 중 하나가
    죄에 대한 감각을 잃는 것입니다. 다윗은 중대한 죄를 범하지만, 그렇다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에게 이것은 단지 "문제"일 뿐입니다. 그래서, 다윗에게는 용서를 청할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는 오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만 골몰합니다. 밧 세바와 관계 후 아이가 생긴 문제이죠.
    다윗은 자문합니다: "어떻게 간통 행위를 은폐할 수 있을까?""

    "다윗은 전략을 하나 짜서 실행에 옮깁니다. 밧 세바가 가진 아이를 우리야가 자신의 아이라고
    믿게 만들려는 계획이죠. 우리야는 훌륭한 이스라엘인이었습니다. 그는 동료들을 생각해서
    이스라엘의 군대가 전쟁 중에 있는 동안은 즐기려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야를 연회와 와인으로 설득하려고
    애쓴 뒤에,다윗은 결단력 있는 행정가로서 결정을 내리고, 군대의 장수인 요압에게 편지를 씁니다.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심한 곳 정면에 배치했다가, 칼에 맞아 죽게 만들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야는 쓰러집니다. 그가 쓰러지도록 거기 보내졌기 때문에 그렇게 됩니다.
    그것은 살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전해들었을 때 다윗왕은 평온했으며 그의 삶을 계속했습니다. 왜일까요?
    다윗은 죄에 대한 감각을 잃었으며 그 순간부터 하느님의 나라는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느님께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주님께 '주님, 제가 한 일을 보십시오. 저희가 무엇을 하는 거지요?'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세상적인 태도 즉,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라고 말하는 전지전능한 관점을 취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감각을 잃고 그 결과로 죄에 대한 감각마저 잃을 때 이와 같은 일이
    우리에게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이 문명의 악"을 "죄에 대한 감각을 잃는 것"으로
    정의하신 비오 12세의 말씀을 떠올리셨다: 우리는 무엇이나 할 수 있어. 우리는 어떤 것이라도 해결하겠어!
    "인간의 힘이 하느님의 영광을 대신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우리에게 있어 매일의 양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께 매일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오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자라나게 하소서! 구원은 우리의 행동을 다루는 영리함이나 빈틈없음이나
    지능에서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오지 않습니다. 구원은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이 은총에
    협력함으로써 받는 매일의 훈련으로부터 올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올 것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성경 구절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셨다: "다윗, 밧 세바, 요압,
    또한 다윗의 주위에 있으며 모든 사실을 알고 있던 신하들: 이것은 진정한 걸림돌이었지만,
    그들은 이 걸림돌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들 역시 죄에 대한 감각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불쌍한 우리야가 있었습니다. 그는 연회의 값을 치렀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우리야의 모습을 묵상하며 참석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러한 불의를, 이러한 인간적
    교만을 볼 때, 그 위험을 알게 되었을 때, 저 자신도 죄의 감각을 잃을 위험이 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저는, 역사를 통해 알려진 많은 우리야의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적당히 지내려고 함으로 인해서 고통받는 많은 우리야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가 죄의 감각을 잃고 하느님의 나라가 줄어들어 사라지도록 방치하면, 이렇게 적당함에
    안주하는 일이 만연하게 됩니다."

    "우리야 같은 사람들은 우리 죄에 의해 희생된 찬양받지 못한 순교자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항상 우리에게 죄의 감각을 잃지 않는 은총을 주시기를,
    그래서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서 절대로 줄어들지 않게 되기를 기도합시다.
    우리 모두 현대의 우리야의 무덤에 영적 부케를 전합시다. 그들은, 지나치게 자신감 넘쳐서
    자진해서이든 아니든 이웃을 살해한 그리스도인의 연회에 대하여 값을 치렀습니다."

    번역 :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 레늄 크리스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