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603 이름: 청바다 | |
퍼온글 /미꾸라지의 본성 실현
‘추선부(鰍鱔賦)’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통 안에 뱀장어가 가득 들어있다. 그들이 살아서 강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은 없다. 회생하리라는 어떤 희망도 잃은 채 한 무더기 밧줄처럼 이리저리 엉켜 축 늘어져 있다.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몇 마리는 이미 죽었다. 그런데 통 속에 미꾸라지 한 마리가 들어왔다. 미꾸라지는 언제나 그러하듯 끊임없이 몸을 비틀어댔다. 뱀장어들은 심기가 불편하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려 놓는다고,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조차 부산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당장은 미꾸라지의 지*발광을 피할 수밖에. 하여 뱀장어들도 좀 더 안락하게 죽을 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몸을 뒤틀었다. 그런데 몸을 뒤틀다 보니 다시 피가 돌았고 뼈와 살에 생기가 되살아났다. 그러다 폭우가 쏟아졌다. 통은 물로 넘쳐나고 통을 벗어난 뱀장어들은 물줄기를 따라 다시 강으로 흘러들어갔다. 뱀장어들이 미꾸라지에게 감사할 일은 아니다. 미꾸라지는 그저 본성대로 움직였을 뿐이다. 누굴 살리려 한 일도 스스로를 살리려고 한 일도 아니었다. 제 본성에 따라 몸을 흔들어 댔을 뿐이다. 성인의 경지란 바로 미꾸라지가 자신의 본성을 실현하는 것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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