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다닐 때였습니다. 
종로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허름한 차림의 아저씨가 내게 다가왔습니다. 

"학생, 몇푼만 구걸하세. 
실은 자식 놈을 만나러 서울에 왔다 돈이 떨어져 시골로 내려갈 여비가 없다네. 
혹시 여유가 있다면 좀 도와주소." 

초라한 행색으로 구걸을 했지만 그것이 구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갓 서울에 올라와 부모님 생각에 날마다 고향 쪽을 향해 머리를 두고 잠을 청하던 때였습니다. 
`우리 아버지도 저럴 수 있어……." 
얼마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지닌 돈을 다 털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서울역에 어떻게 가야하는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버스 탈 돈이 없어서 자취방까지 꽤 먼 길을 걸어왔지만 기분은 너무나 좋았습니다. 

다음 날, 다시 종로 그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였습니다. 
이쯤되면 여러분들도 제가 무슨 얘기를 하려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바로 그 아저씨가 다른 학생에게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아저씨는 그 다음 날도, 다음 다음 날도 제 또래의 학생들을 붙들고 
거짓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도시의 비정을 뼛 속 깊이 느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속은 것이 억울하고 억울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그런 아저씨 행각이 무서웠습니다. 
제가, 그렇게 당한 제가 빤히 보고 있을텐데도 그 아저씨는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아저씨와 눈이 마주칠까봐 시선을 돌려야 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아마 지금도 그런 양태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정 주고 뺨 맞고, 돈 주고 걷어 차이고, 먹여주고 욕 먹는 일 말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걸 속에도 폭력이 스며있습니다. 

詩人 : 김택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