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의 지혜 경남 진주의 칠암동에 사는 정영주 씨가 일곱살 때의 일이었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정육점에 심부름을 다녀오라고 하셨다.
어린 영주는 가기 싫다고 했다.
세 살 때 청력에 이상이 생겨 발음이 이상했던 영주는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을
몹시 싫어하고 하루종일 말도 잘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러니 심부름을 가고 싶어할 턱이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영주의 어깨를 붙들고는 자꾸 연습을 시켰다.
"자, 이렇게 말하는 거야. 카레하게 쇠고기 육백그램만 주세요. 말해봐, 쇠고기 육백그램."
영주는 싫다고 고개만 내저었지만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설득했다.
"연습한대로만 하면 사람들도 다 알아들을 거야. 걱정하지마"
할 수 없이 영주는 정육점에 갔다. 하지만 얼른 가게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주인 아줌마의 시선을 피해 정육점 주변을 뱅뱅 맴돌면서 이제 가볼까,
조금 더 연습하고 갈까 하면서 머릿속으로 같은 말을 외우고 또 외웠다.
그러다가 그만 정육점 주인 아줌마와 시선이 딱 부딪히고 말았다.
아줌마는 영주를 보고 환히 웃고 있었다.
아줌마는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영주는 그만 도망을 치고 싶었지만 용기를 내어 아줌마에게 다가갔다.
아줌마는 여전히 웃으시며 물었다.
"뭘 줄까?"
두려움과 그 아줌마의 웃음이 주는 안도감이 어린 영주의 가슴에 뒤범벅이 되어
그만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영주는 바짝 마른 입술로 천천히 얘기했다.
"엄마가요...카레...하는데...쇠고기요...육백그람사오래쪄요..."
그러자 아줌마는 금세 알아듣고는 고기를 내주셨다.
그 후 정육점 심부름은 영주차지였고 차츰 다른 가게로도 심부름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영주는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별 어려움 없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십여 년 후, 영주는 알았다. 주변의 가게 주인들은 몽땅 엄마에게 포섭되어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가게마다 일일이 찾아다니며 영주를 심부름 보낼 테니 잘 좀 대해달라고
부탁을 해놓았던 것이다.
지혜로운 어머니 덕분에 지금 영주 씨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책「작은이야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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