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교 묵상

세월아,잔인한 모습을 바라보았던 세월아
산 목숨들 줄줄이 죽어나갈 때마다
진실을 침묵으로 담아내는 너는
죽인 자들 향해 덧없다 소리치지도 못했겠구나
네가 보는 앞에서 수난의 올무에 걸려든 양심들을
푸른 하늘 바라보며 눈물 지울 때마다
세월아,너는 그때마다 강물 같은 울음을 껴안고
그 순하게 죽어간 양들을 위로했겠구나

영원의 문턱에서,죽음밖에 길이 없는
절벽 같은 날들이 네 앞에서 지워질 때마다
세월아,너는 그 끝없이 안타까운 얼굴들을 보았겠지
짓이겨진 고통을 걸치고 떠나는 형제자매들을
너는 보고 또 보았겠지
뼈아픈 기억들이 밀려오는구나

그 참혹한 시대를 지나 지금의 우리에게로 온 세월아
너는 순교한 영혼들의 빛을 끊임없이 안고 와서
우리의 어둠 앞에 부리는구나
그 날에,선조들이 피를 토하며 지켰던
믿음,희망,사랑의 열정을 너는 껴안고 와서
게으른 우리의 가슴에다 채우는구나

세월아,영원을 가리키는 숨결 같은 세월아
죽어도 죽지 않은 빛과 사랑이 
끊임없이 싹을 틔우는 밀밭 같은 세상을 보며
너는 우리에게 영생의 큰 기쁨을 일깨워주는구나

詩人: 이인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