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설어가는 부부들의 투정

주님,
접었던 날개를 펴고 날아 다니겠다는 것은 마음뿐이고
재주가 없어 모든 것을 끌어안고는 굴러다니고 있습니다.
그나마 잘 구르기 위해서 당신의 슬기와 지혜를 간원합니다.
 
오한이 나서 머리끝까지 솜이불을 끌어 덮고 
오싹해 지는 등골의 숨소리를 조절하고 있었습니다.
온몸이 늘씬 맞은 것 같았지만 
마음만은 온갖 맺혔던 시름들이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 하루는 양심의 보챔 없이 게으름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
새벽 6 시에 전화 벨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우리 집 전화는 유난히 고장이 잦은 편인데 그날은 고장도 나지 않았습니다.
 
온 세상이 당장 꺼질 듯한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제 남편 좀 찾아 주세요..."
 
몸살 기운을 핑계로 안일함을 넘보다가 당신께 들켜버려
또 벌을 받게 되었다고 투덜거렸습니다.
 
조금 진정 시킨 후 연유를 물어 보았더니...
1 주일 전 부터 남편과 다투었다는 것입니다.
연유는 화창한 주일날 나들이 한번 가지 않고 잠만 자는 
남편이 세상에서 제일 못나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한 남편과 아빠로서의 사명감은 스스로 기력에 무리가 가더라도 
그 의무를 다해야 하는데 한 주간의 피곤에 두 손을 들었던 모양입니다.
 
1주일 동안을 한 지붕밑에서 방을 따로 쓰며 상대방의 자존심을 
죽이기 작전을 펴왔는데... 새벽 일찍이 나가더라는 것입니다.
예감이 이상해서 방에 들어가 보았더니 책상 위에 유서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여보, 그 동안 당신 덕분에 행복했소. 
돌이켜보면 고생만 시킨것 같구료.
아이들을 부탁하오.
난 당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잠을 좋아했기에
이제 어쩔 수 없이 영원한 잠을 자러 가오."
 
회한이 고여 목메인 소리로 그 유서를 읽어주더니 
그 이를 신부가 찾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요즘 사람들은 저 나름대로의 빛갈을 칠하고 
상대방이 찬사를 보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그 빛갈의 의미도 모르는채 나무라고만 있습니다.
 
"우리 집 그이가 매일 늦게 들어오니 혼쭐을 내 달라,
우리 집 마누라 바가지 긁지 말라는 강론을 좀 해달라..."
 
주님, 
부부는 혈연보다 더 소중한 애틋한 사랑을 이런데서 찾아내는 모양입니다.
 
능구렁이가 몇 마리 들어 있는 그 남편의 작전임을 알아챘습니다만...
어쩌겠습니까? 자기 남편은 한번 한다면 하는 성격이라 지금쯤 
죽었을 지도 모른다며 보채는 그 여인에게 장례절차를 의논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말하려다가 말았습니다.
 
목까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이며
나름대로의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해서 
손톱으로 발가락을 몇 번이나 꼬집어 뜯었습니다.
 
주님, 
종종 삶의 애락을 나누지 못하고 서로의 숨결과 체온이 못내 
낯설어져가는 부부들의 투정이 이렇듯 잦아지고 있습니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도 서로 티격태격하던 부부들이
서로의 교감 속에서 곧 희희낙낙할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좋은 남편을 원했으니 좋은 아내가 되었었는가를 참회하면서
겸허한 자세로 기다려 보라." 고 달래어 줄 뿐이었습니다.
 
그 이튿날 새벽에 나란히 앉아 미사를 봉헌하는 그 부부를 보았습니다.
씨-익 웃으며 돌아가는 그 부부는 신부를 약 올린 그만큼 다정해 보였습니다.
쫓아가서 발길질을 해버리고 싶을 만큼 얄밉다가
또 그렇게 귀여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
작은 그 정들이 맞닿은 곳에 훈훈한 생명이 깃들 것입니다.
그날 아침 그 집 식탁에는 남편이 좋아하는 냉이국이 올랐겠지요.
 
저는 마디마디 저며오는 몸살의 진통을 다스리기 위해
두터운 솜 이불 속으로 다시 들어가
그 식탁의 분위기를 상상하는 것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했습니다.
 
주님,
늦은 봄을 앓고 있는 제 모습이 추해보입니다.
 

이창덕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