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호텔 르완다’
<1994년 르완단 집단학살을 배경으로, 투치족 1000여명을 
자신의 호텔에 피신시켜 목숨을 구한 한 호텔 지배인의 실화 >


르완다，유엔평화유지군  
 
 글 : 이신화 / 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지난주 말 ‘호텔 르완다’라는 영화를 봤다. 
아프리카 르완다 대량학살사태를 다룬 이 영화는 2005년 판 
‘쉰들러 리스트’로 관심을 모으면서 현재 미국에서 상영되고 있다. 
르완다 사태는 인류역사상 가장 잔혹한 참상 중 하나였지만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무관심 속에서 1994년 100일 여 동안 
최소한 80만 명이 학살되었는데,이 영화 속의 호텔 매니저
폴 루세사바기나는 당시 위험을 무릅쓰고 1268명이라는 투치족을 
자신의 호텔에 피신시켜 목숨을 구해준 실존 인물이다. 

필자는 5년 전 유엔본부에서 르완다학살 관련 특별자문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 터라 이 영화를 보는 감회가 남달랐는데,
르완다 비극은 왜 유엔평화유지활동(PKO)이 단순한 군사적 개념의 
평화유지활동 차원을 뛰어넘어 그 역할을 증대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대량학살에 대한 경고가 르완다에 이미 파견되어 있던
평화유지군(UNAMIR)을 통해 유엔본부에 전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는 비극사태를 예방하지 못했을 뿐아니라,
평화유지군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투치족과 후투족간의 내전이 재발하였고 후투족의 투치족에 대한
대량학살 행위도 멈추지 못하였다. 

평화유지군의 최고사령관인 로메오 달레어 장군측은 학살 발발 직후
무력을 사용한 직접 개입을 할 입장을 밝혔으나 
유엔본부(특히 안보리)는 그러한 개입은 ‘위임된 임무’(mandate)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1994년 4월 대량학살이 시작된 후 평화유지군의 
사상 소식이 전해지자 안보리는 270명을 제외한 모든 PKO군 병력을 
르완다에서 철수시켰다.
이는 1992년 보스니아 내전 참상을 고발한 코믹 영화인 
‘노맨스 랜드(No Man''s Land)’에서 유엔평화유지군이 지뢰를 깔고
누워있는 병사를 구출하지 못한 채 떠나는 장면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분쟁 당사자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구실 아래 
유엔군의 무기력함과 방관자적 태도를 나타낸다.

또한 유엔 회원국들은 자국 병사들의 안전을 이유로 르완다에 
군대를 보내는 것을 꺼려했다. 
각국 지도자들은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 자국 내 비판여론과 이에 따른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의 약화를 더욱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1993년 소말리아 내전 개입 당시 15명의 미군병사가 처형된 
악몽을 되살리기 싫어한 미국은 르완다 사태를 
‘대량학살과 유사한 행위’라고만 일컬으며,
후투 정권이 몰락하고 대량학살이 끝난 1994년 7월이 될 때까지 
개입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사태를 대량학살이라 규정짓는다면 
1948년 ‘대량학살에 관한 협약’에 
서명한 국가는 대량학살 방지에 대한 법적 의무를 지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회원국도 자국의 자원과 인력을 소비하면서까지 
국익과 관계없는 나라의 위기상황에 개입하여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려 들지 않는다. 

평화를 유지하고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평화유지군이 투입된 
르완다에서 대량학살이 발생한 점은 진정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혹자는 평화유지군의 존재가 르완다에서 오히려 더 많은 희생자를 낸
화근이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 지역에 파견된 평화유지군의 임무에 민간인에 대한 보호라는 규정이
있든 없든 간에 PKO 존재 자체가 그 지역 주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국제사회(유엔)에 의해 안전을 보장받고 있다는 기대(혹은 환상)를 
갖게 하여 그들 스스로 보호하고자 하는 방안마련에
소홀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유엔은 분쟁 및 인도적 위기사태의 사전방지나 
신속한 대응을 위해 PKO 역량제고에 역점을 기울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 여간 아프리카 수단 다르푸르 지역에서 
벌어진 소위 ‘인종청소’ 및 난민위기를 막기 위한 어떤 효과적인
개입도 하지 못하였다. 실로 학살위협과 폭력을 동원한 인권유린의 
현장에서는 중립
(그것이 아무리 유엔평화유지활동의 주요 원칙이라 할지라도)이란 
있을 수 없으며 즉각 개입해야 한다는 유엔의 발상전환 및 
회원국들의 적극적인 물적 지원이 없는 한 르완다의 비극은 
계속하여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국민일보 2005년 2월15일에서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