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하는 고통은 독이 되고 받아들이는 고통은 약이 됩니다  
  

제가 신학교2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동료들과 성체조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저의 양 가슴에 구더기 뭉치가 살아 움직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정말이지 그 당시 얼마나 놀라고 더러웠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그때부터 구더기는 저의 가슴에 기생하면서 저를 밤마다 괴롭히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이 체험이 있기 전까지 참으로 착한 사람인줄 착각하면서 살았드랬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동료들까지도 저를 착한 사람으로 오해를 계속해 왔던 것입니다. 
낮에는 활동을 강하게 하기 때문에 구더기의 존재를 쉽게 잊고 살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존재가 잠들은 캄캄한 밤이 되면 너무나 또렷하게 
그 구더기의 군상을 제 가슴속에서 확인하였습니다. 
참으로 어지럽고도 더럽고 메스꺼웠습니다. 

오! 주님 제가 이다지도 더러웠던가요. 
제가 당신을 십자가에 매달은 장본인입니다. 
제가 당신을 옷 벗기고 매달은 채찍질로 두드리며 얼굴에 침 뱉고 
조롱하던 바로 그 인물이었나이다. 

오! 하오나, 주님 당신께서는 당신 오른쪽 강도에게 내리신 축복과 
용서의 크신 사랑으로 죄인의 몸 전부를 온전히 끌어 안으시고 
당신과 함께 천국으로 성부에게로 가시기를 원하셨나이다. 
매일 밤마다 저의 악성의 활동으로 인해 온 몸이 징그럽고 아팠나이다. 
제 악성의 활동으로 인해 저는 밤마다 땅바닥에 뒹굴었고 
회개의 쏟아지는 눈물로 저의 옷자락을 적시었드랬습니다. 
그런 아픈 날들이 하루가 지나고 하루가 또 지나면서 
거의 5년6개월 동안 저를 괴롭혔던 것 같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의 아픔이 끝나고 저의 가슴에 살아있던 
구더기 군상들은 하얀 껍질만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구더기의 죽은 군상들의 껍질들이 제 가슴에 남아 있으면서 
몸서리치던 고통과 아픔의 날들을 회상케 하고 있나이다. 

여태까지 세상의 문제들을 저의 악성 때문에 반쪽밖에 보지 못했드랬습니다. 
산과 들, 하늘과 바람, 꽃과 곤충, 당신과 이웃들의 
모습을 반 밖에 확인하지 못했드랬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 보이나이다. 
모든 이웃이 내 형제임을 알아보나이다. 
모든 피조물에서 당신의 흔적을 확인하나이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당신의 질서를 깨우치나이다. 
낮과 밤, 추위와 더위, 아침과 저녁의 반복사이에서 또 다른 당신의 생명, 
당신의 질서, 당신의 섭리, 당신의 사랑을 보게 되더이다. 

오! 주님 이렇듯이 아픈 세월을 거치는 동안, 당신의 아픔은 어떠했나이까? 
제가 아파했던 것보다 더 크고 깊게 당신의 고통이 함께 하셨나이다. 
이제 그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 지금 이것은 바로 
당신의 고통과 아픔 덕택이었나이다. 
당신의 고통과 아픔이 아니었더라면 이내 몸은 스스로의 고통 때문에 
지쳐서 열흘 밤을 넘기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이제 당신의 그 크신 은총으로 저는 저로부터 자유로우며 
님으로부터도 자유로우나이다. 
이 자유는 모르긴 해도 당신이 엮어 오신 그 날 그 날의 현실 앞에 
온전히 무릎 꿇고 당신께서 허락하신 그 날의 수많은 일과 사건 앞에 
온전히 순명하였던 결과 이옵나이다. 
이제 저에게는 오늘 밖에 또 다른 날이 있지 않나이다. 
언제나 현재이신 당신이 펼쳐 놓으시는 오늘 순간 순간에서 
온전히 순명하게 하옵소서. 

주님, 저로 하여금 오늘을 충실되이 살아 영원함을 얻게 하옵소서. 
순명은 자유를 낳고 자유는 영원을 이어가는 부드러운 끄나풀이더이다. 
오늘의 작은 일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오늘의 작은 일들 속에서 영원을 구하게 하소서. 
주님, 당신처럼 영원히 현재로 있어지리이다.  아-멘 

- 최영배 비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