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루카 10,25-37)

글 : 최인호베드로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우리나라가 낳은 
최고의 서예가이자 사상가입니다.

그가 태어났던 시절은 조선왕조의 절대이념이었던 성리학이 근본을 상실하여 
현실과 유리되었을 뿐 아니라 학문 자체가 공허하게 되어서 
한갖 공론에만 그치고 말았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이에 불만을 품은 김정희는 1809년 24세의 나이로 
사신의 일행으로 북경에 들어가 당시 중국의 거인었던 옹방강(翁方綱)과
완원(阮元)의 가르침을 받고 크게 깨우치게 됩니다.

김정희가 이들에게서 배운 것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이었습니다.
'실제 있는 일에서 올바른 이치를 찾는다'는 실사구시의 사상을 
김정희는 스스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약 학문을 하는 데 있어서 실제로 있지도 않은 것으로서
일을 삼아서 
다만 속이 텅 비고 엉성한 잔꾀로써 방법을 삼는다거나 
그 올바른 이치를 찾지 않고 다만 잘못 얻어들은 말로써 
주장을 삼는다면 이는 성현의 길에 어긋나는 일인 것이다."

공허한 이론에서 학문의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에서 학문의 길을 찾음을 
김정희는 실학(實學)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따라서 김정희는 공허한 이론을 숭상하는 것이 학문의 길이 아니라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학문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김정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다만 넓게 배우고 힘써 실행할 것이니 오로지 
'실제 있는 일에서부터 올바른 이치를 찾는다'는 
이 한 마디의 말을 기본으로 삼아서 이를 실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인입니다.
우리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향해 던지는 질문의 정답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들의 질문은 대부분 
'예수의 속을 떠 보려는' 율법교사와 
'짐짓 자기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율법교사의 
질문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 사랑인지,어떻게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는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 무엇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끊임없이 주님을 떠보기 위해서,
자기가 옳음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 공허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대답해 주시는 것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면 살 수 있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아는 체하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진정으로 강조한 것은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라는 실행의 믿음뿐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라는 
자신의 말씀처럼 그곳에 가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학문의 길이란 공허한 이론을 숭상하는 것이 아니라
옛 성인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것에 있다고 주장한 
김정희의 '실사구시'의 정신이야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참믿음의 정신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산 믿음이 아니라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  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