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집에 빈 방 하나

글 : 최인호

우리가 진실로 무엇을 배우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어 놓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을 때는 
우리의 위장이 텅 비어 있을 때인 것이다.
위장이 텅 비지 않으면 우리는 배고픔을 느끼지 못한다.

뜨락에 내놓은 독도 비어 있어야만 오가던 소낙비가 
그 독에 빗물을 채울 것이다.
우리가 진실로 갈증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스스로 마음의 잔을 비우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마음의 잔을 비우지 않으면 새 술은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은 헛간과도 같다.
우리들의 마음은 낡고 허름한 집과도 같다.
방이 많은 낡은 집이다.
처음으로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갓난아기로 자라날 때
물려받은 마음의 집은 아름답고 반짝이는 새집이다.
정원의 꽃도 아름답고 문도 커튼도 모두 새것이었다.

살아가면서 마음의 집은 때묻고 무너져 갔다.
어떤 사람은 아예 물려받은 영혼의 집을 
유령에게 팔아먹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집을 용도 변경해서 
하숙집으로 개조해 버리기도 했다.

살아갈수록 쓰레기는 쌓이고,
방에도 먼지가 쌓이고,
커튼은 때묻고 천정에는 거미줄이 걸렸다.
뜨락은 황폐해져서 빈 바람만 위잉위잉 달려가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모른 체한다.
헛간에 하잘것없는 쓰레기들이 가득 차 있다.
주워 온 못 쓰는 명예와 고물시장에서 수집한 질투심,
아무래도 버리기가 아까워 그저 헛간에 보관하고 있는 
고장난 양심에다가 공연히 주워 모으는 옷이나 헌 잡지 나부랑이,
녹슨 철사와 같은 못,돈 같은 것,
그런 쓰레기들이 가득가득 차 있어서 발디딜 틈이 없다. 

이제라도 우리들이 마음의 집을 털어내어 
손님 맞을 채비를 한다면 손님들은 찾아오고
정원에 새들은 날아 올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저 하잘것없는 쓰레기들을 
소각해서 매몰해 버리고 
마음의 집에 빈 방 하나를 준비해 두어야 할 것이다.

마음의 집 속에 빈 방 하나를 마련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것이다.
왜냐하면 워낙 방이 많은 집이므로 벽에는 그림들도 걸어 놓고, 
어제까지는 쓰레기가 가득했던 방 하나만을 
온통 밝은 불로 켜 놓아 
손님 맞을 준비를 끝내고 그리고 기다리자.
그리하면 올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손님은 기꺼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찾아와 묵을 것이다.

그 손님은 당신을 때로는 괴롭힐 것이다.
당신의 헛간에서 못 쓰는 것들을 내다버리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화가나서 손님과 대판 싸우고 그에게 집을 
나가 달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곧 당신은 그것을 
후회하고 뉘우치며 돌아와 함께 머물자고 할 것이다.

그는 당신의 집을 빼앗으러 온 것이 아니며,
당신의 주인 노릇을 하러 오는 것도 아니다.
그는 단지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완료하고 있는 손님인 것이다.
당신이 평생을 그 손님과 함께 살고 싶다면 
그는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다.
그 손님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당신의 아주 작은
방 하나를 깨끗이 치우고 쓰레기를 겉어내야 할 일이다.

▒ 최인호/사랑아 나는 통고한다 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