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6/20(월)

나와 다른 그대여   나와 다른 그대여 엄마와 완전히 하나인 듯한 태아도 자기와는 다른 엄마의 자궁이 자신을 감싸주고 있기에 생명을 유지할 수 가 있습니다. 작은 물고기도 자기가 아닌 플랑크톤이 물 속에 살기에 그것을 먹고 살아 갈수가 있지요. 식물도 땅 속에 있는 무기물을 빨아들이고, 동물은 풀이나 다른 동물의 고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뿐이겠습니까? 존재를 온통 둘러싸고 있는 공가, 물, 산, 거대한 우주라는 나 아닌 타자가 있기에 나라는 작은 생명이 존재를 이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타자의 도움 이것은 물질적인 것에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렇게 타자의 도움으로 일생을 살다 어느 순간엔가 다시 타자에게로 나의 몸을 돌려주는 순환의 고리 안에 우리 인간의 몸도 담겨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나무들은 자신의 몸의 일부였던 잎들을 미련없이 땅으로 되돌립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돌려주는" 생명의 순환인 것이지요. 이렇듯 너와 내가 뗄 수 없는 연관 속에 살아가거늘 현실의 인간 관계 안에서는 너와 내가 서로에게 짐이 되고, 없는 것이 더 나은 관계로 살아가는 일이 허다한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가장 가깝다는 부부, 부모 자식 사이에도 긴장이 있습니다. 물론 긴장 자체가 문제일 수 없을뿐더러 긴장은 성장 과정의 건강한 표지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긴장을 극복하지 못하고 소원함, 원망, 공격성, 미움, 경멸 등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겠지요. 급기야는 더 이상 삶을 함께 지속할 수 없어 갈라서는 부부들이 서너 쌍 중에 하나라는 통계 숫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타인의 행동, 말, 생각에 접하면 우선 내가 참 여유로와 집니다. "왜 저래?" "뭐 저런 말을 하지?" "저런 행동은 좀 피해줬으면 좋으련만!" 등의 말로 표현되는 타인을 어떤 잣대로 판단하는 생각 자체가 나를 좁고, 답답하게 만듭니다. 설사 상대방이 정말 틀렸다 할지라도, 그 상대방이 나의 자녀, 남편, 형제라 할지라도 우리는 타인을 고쳐 놓을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 깊은 구석에서 '이래서는 안된다'는 움직임이 있을 때 인간은 바뀔 수 있습니다. 이 마음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 아닌가합니다. 그래서 틀렸다는 생각이 들 때는 그것을 고쳐주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가 되지만 만약 내가 불편을 느끼는 부분이 서로 다른 것이라면 존중해주어야 하는 것이 됩니다. "아 저렇게도 할 수 있네!" "그래 당신의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보세요." 의견이 서로 부딪칠 때 이런 말 한 마디는 작은 기적을 이룰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 다른 너와 나 사이에 숨을 쉴 수 있고, 서로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납니다. 이럴 때 너와 나 사이의 공간은 신비의 영역이 됩니다. 생명을 주는 사랑이 깃들어 있어 다른 생각을 가진 너가 너의 모습대로 해보도록 허락하는 자유가 넘실대는 공간, 서로 다른 너와 내가 함께 새로운 것을 이루어 가는 신명나는 새 창조의 공간이 됩니다. 늘 대하는 새로울 것도, 흥미로울 것도 없는 타성에 빠져버린 인간 관계 안에서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관심과 애정이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서로 달아야 합니다. 다름은 하느님 사랑이 빚어신 숙제요, 그 다름을 서로 조화시켜가는 과정을 통해 하느님 아빠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을 닮아가도록 주어진 숙제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에는 "나와 다른 그대여!"라고 타인의 다름을 존경과 감탄으로 바라볼 수 있는 복된 날이 오기를...." [트라피스트 수녀원 소식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