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시간   

이글은 1945년 4월 23일 사이요 궁에서 피에르 사제가 주최한 
‘레지스탕스 운동가의 23개월’이라는 집회 때 발표된 내용 중에서 
발췌한 글이다. 

아, 우리 모두는 그런 특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특권이라고 말한 까닭은, 내가 고통을 받음으로써 타인의 고통을 
훨씬 더 잘 수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목숨을 
빼앗으려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던 사람들, 
그들과 함께하고 그들을 도울 수 있었던 나는 은총을 누렸던 것이 틀림없다. 

나는 그들 편에 서지 않을 수 없었다. 
수개월 동안 기차나 전철에서 내릴 때마다 쉴 새 없이 주변을 살피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돌아가야만 하고, 옆에서 걷는 사람이나 
조금 전에 자신과 눈을 마주친 사람이 혹시라도 밀고자가 아닌지, 
미행자가 아닌지 끊임없이 불안한 마음으로 의심해봐야 했던 사람들. 
때때로 자동차가 갑자기 자기 옆에 멈춰서기라도 하면, 
겁에 질린 자기의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물어야 했던 사람들. 
가장 친한 친구, 부모, 형제들을 만날 때도 행여 자기 때문에 
그 사랑하는 자들이 죽게 되는 건 아닌지 마음 졸이면서 만나야 했던 사람들. 
매월 말이면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배급표를 구할 때마다 
초조하고 불안하고 공포에 떨어야 했던 사람들. 

나는 그들 편에 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이런 무서운 삶의 조건이 주는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베 피에르 | 우물이 있는 집 | <이웃의 가난은 나의 수치입니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