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관 일기 한 편을 부치며

 한 할머니가 사제관을 방문하십니다.
무에 그리 조심스러운지,
뭔가를 손에 들려 주시고는 서둘러 나가십니다.
장백산 불로초로 빚은 영험한 술이라며,
꼭 드시라는 당부와 함께.

그 술을 받아든 순간, 예전에 들었던 한 사제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몇 달만에 사제가 공소로 미사를 오시는 통에
마을은 잔치가 벌어졌다 합니다.
사제를 대접하고 싶은 신자들의 마음씀이
점심 한 상에 가득히 담아졌습니다.

할머니 한 분은 용한 술이라며,
술 한 병을 내놓으셨습니다.
아들놈이 서울 가서 사온 술인데, 
귀한 거 같아 딱 한 잔만 먹고 장롱 속에 꼽쳐놓았다며,
신부님 오시면 드리려고 몇 달씩이나 묵혀놓았다면
그렇게 꺼내놓으신 술.
신문지를 꼽쳐 틀어 막아놓은 그 술이 김빠진 맥주라는 사실을 안 순간,
사제는 아연실색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사제는 고백합니다.
평생 가장 맛있던 술은 바로 그 술이었노라고.
장백산 불로초.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전설의 이름.
이름만 들어도 영험이 감도는 이 신령한 영약을 오늘 받았습니다.
그것도 한 할머니에게서.
자신의 목숨을 연장시키는 일보다 젊은 사제를 더 오래 살리고 싶은
할머니의 소망이 담겨진 술을 받아들고 
사제는 오늘 하루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영원히 살릴 수 있는 영약은 세상에 없음을.
그리고 그 술이 영약의 이름을 빌려온 한낱 술이라는 사실도.
그러나, 진짜 가짜를 따져 가치를 매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설령 불로초가 존재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할머니의 믿음을 깨고 싶지 않기에,
전설의 이름만으로라도 마음속에 살려두겠습니다.
그리고, 이 술을 평생 가장 값진 선물로 기억하겠습니다.
할머니의 정성이 빚어낸 술이기에 세상 다시금 맛볼 수 없는
맛과 향을 지니고 있을 거라 믿겠습니다.

비록 이 술이 젊음을 돌이킬 수야 없겠지만,
이 술을 마시며,
마음을 싱싱하게 돌이키고,
늙지 않는 마음으로 살 수만 있다면,
이 약이야말로 세상 다시없을 불로초일 것입니다.
할머니의 사랑이 있는 한,
전설의 불로초는 진실의 이름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글: 김 강정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