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6/20(월)

생명력   생명력 봉쇄 수도원이라는 곳은 '아기'들을 보기가 참 힘든 곳이라, 어쩌다 두 세 살 먹은 아기를 보면 이런 인간도 있나 싶어 경탄과 감탄에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그 귀함이 이루 형언할 길 없는 신비감을 안겨주곤하여, 아기가 돌아간 후에도 남은 그 느낌은 많은 것을 묵상하게 해줍니다. 어찌할 바를 모를 것 같은 느낌마저 주는 '그 귀함'이 아무리 크다 해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그 시선의 한 조각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바로 그렇게 귀하게 바라보시는 사랑의 시선을 받고 살아가고 있는 둘도 없이 귀한 존재들임을 아기들이 가르쳐주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가장 추악한 인간으로 우리 눈에 비치는 사람일지라도 그렇습니다. 이 때문에 하느님이 신비이듯 생명 또한 신비인 것입니다. 이렇듯 귀한 생명이 나만 좋으라고 나부터 즐기라고, 나를 풍요롭게 하라고 주어진 것이겠습니까? 고이는 물은 썩고, 인간도 먹기만 하고 배설하지 않으면 큰 탈이 나듯 생명도 받으면 받을수록  전달해주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썩어갑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생명력은 태어날 때 한 번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자연의 생명력을 무한히 초월하여 받고 또 받을 수 있도록 우리는 끊임없는 초청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무한한 생명에 접하며 또 하나의 작은 생명의 원천, 창조의 원천이 되도록 불리움 받은 고귀한 존재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실상 우리 현실의 삶에서는 사랑이 고갈되어 가는 것을 더 많이 느낍니다. 환경이 나빠지거나 사랑하던 사람의 애정이 식어 가는 것을 느끼면 이쪽도 덩달아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는 것이 보통 인간입니다. 나이가 들어간다고 사랑이 저절로 풍요로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저쪽이 싫어하면 나의 사랑도 식어 가는 것이 보통 인간들이지요. 이것은 그 사람이, 우리 자신이 특별히 나쁜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자연적인 생명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고갈이 너나 나 모두가 겪는 인간조건이라면 쓸데 없는 죄의식에 사로 잡혀 자신을 쓸모 없는 인간으로 낙인찍고 절망감에 휩싸여 살아 갈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생명이 고갈되고 바닥나는 듯한 느낌마저 드는 이 때가 참으로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 고갈과 바닥남을 경험하며 새롭게 태어날 때 자연적인 생명의 한계인 '나 중심'을 탈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년에 접어든 분들이 많이 겪는 자식과 배우자로부터의 소외감과 박탈감의 바닥은 사실 내가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나중심의 결과입니다. 이 박탈감을 그대로 수용하고 인간이 줄 수 없는 그 사랑의 원천을 경험하는 깨달음, 눈뜸을 체험하게 되면 생명의 방향에 역전이 일어납니다. 끊임없이 끌어 당기고, 힘을 발휘하고, 사랑받고자 하던 욕구의 흐름이 사랑하고, 힘을 주고, 수용하고, 이해하며, 감싸주는 반대흐름으로의 전환이 일어납니다. 내어줌, 섬김의 기쁨에 몸마저 맑아집니다. 소유와 집착과 애정의 굴레 안에 소용돌이치던 자아는 경탄과 감사 안에서 자기 자신을 망각하고 이웃을 향해 방향을 바꿉니다. 자유와 해방은 나를 벗어나 타를 향해 가는 생명의 흐름에로의 합류입니다. 너와 내가 함께 부르는 합창, 교향곡입니다. [트라피스트 수녀원 소식지에서]